-
Notifications
You must be signed in to change notification settings - Fork 1
/
ch5.html
53 lines (48 loc) · 21.8 KB
/
ch5.html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html lang=ko>
<head>
<meta charset="utf-8">
<meta name="viewport" content="width=device-width,initial-scale=1.0,minimum-scale=1.0,maximum-scale=1.0,user-scalable=no">
<link rel="stylesheet" type="text/css" href="book.css">
</head>
<body>
<div id="content">
<h1>5장. 메시지로서의 생물</h1>
<p>이 장의 내용은 공상의 요소를 포함할 것이다. 공상은 항상 철학이 애용해왔던 것이었고, 플라톤은 그의 인식론에 동굴에 관한 메타포를 사용한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특히 브로노프스키(역자주: 1908~1974. 영국의 수학자이자 생물학자, 역사학자, 극작가, 시인, 발명가 였음) 는 모든 과학중에 우리가 가장 사실적인 학문으로 보고 있는 수학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많은 양의 메타포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이 메타포들의 성공 여부에 따라 평가되야 한다고 지적했다.</p>
<p>내가 이 장을 할애해서 쓴 메타포는 생물을 메시지로 보는 것이다. 메시지가 잡음에 대립되듯이 생물은 혼돈과 분해, 죽음과 대립된다. 생물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안에 있는 각각의 분자를 설명한다거나 세세한 분류목록을 만들려하지 않고 그것의 패턴을 드러낼 수 있는 특정한 질문들에 답을 하도록 할 것이다. 생물이 좀더 완전한 생물로 변할 수록 좀더 중요해지고 잘 나타나지 않는 패턴 말이다.</p>
<p>우리는 이미, 사람과 같은 특정한 생물은 잠시동안 그들의 조직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조직화를 증대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혼돈을 증가시키고 분화를 줄이는, 엔트로피 증가라는 일반적인 흐름에 있어서 소규모의 고립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생명은 현시점에서 죽어가는 세상 안의 섬이다. 우리들 생명체가 부패와 붕괴의 일반적인 흐름에 저항하는 과정을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한다.</p>
<p>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매우 특별한 환경에서만 살아나갈 수 있고, 언젠가는 우리가 재구성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는 죽게 된다. 우리 몸의 온도가 화씨 98.6도(역자주: 섭씨 37도) 라는 평균 온도에서 1도라도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그 차이를 인지하기 시작하고, 10도 이상 변하게 되면 우리는 확실하게 죽게 된다. 우리 혈액 속의 산소, 이산화탄소, 소금과 내분비선에 흐르는 호르몬들은 어떤 예기치 않은 변화에도 저항하려는 매커니즘에 의해 조절된다. 이들 매커니즘이 항상성이라 불리는 것을 구성하며, 기계적 오토마타에서 전형적인 유형이 된 음의 피드백 매커니즘이다.</p>
<p>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의 초석이 되는 것이 바로 이 항상성에 의해 유지되는 패턴이다. 우리의 세포조직은 살면서 변화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우리가 숨쉬는 공기는 우리 몸의 뼈와 살이 되며, 우리 몸의 뼈와 살의 일부분은 매일 우리의 배설물과 함께 몸을 빠져 나간다. 우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의 소용돌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머무르는 물질이 아니라 스스로를 영속화시키는 패턴이다.</p>
<p>하나의 패턴은 하나의 메시지이며, 메시지로서 전송될 수 있다. 소리의 패턴을 전달하지 않고서 어떻게 라디오를 사용할 수 있겠으며, 빛의 패턴을 전달하지 않고서 어떻게 텔레비젼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상을 해보는건 유익할 뿐만 아니라 즐거운 일이 될 것인데, 만약 우리가 사람 신체의 전체 패턴과 기억과 연결상태를 가진 인간의 두뇌의 전체 패턴을 전송할 수 있고, 가상의 수신 기기가 있어서 이 메시지들을 적절한 물질을 이용해 재구성해서 신체와 마음에 존재하던 프로세스를 이어나갈 수 있고, 항상성이란 프로세스를 통해 이 이어짐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p>
<p>공상과학의 영역으로 한번 들어가보자. 45년 전쯤, 키플링(역자주: 1865~1936. 영국의 시인, 소설가. 정글북의 저자)은 훌륭한 단편을 하나 썼다. 당시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으나, 비행이 일상적인 일이 되기 이전이었다. 그는 소설의 제목을 “야간 우편 비행기" (“With the Night Mail”) 라고 붙였는데, 대서양을 하룻밤에 횡단할 수 있고 비행이 일상화된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 대한 설명으로 요약되는 내용이다. 그는 항공 여행이 세상을 하나로 묶어 놓아서 전쟁이 없어진 세상을 가정했다. 세상의 모든 중요한 행사는 항공 관제 위원회(Aerial Board of Control)의 손에 달려있는데, 이 위원회의 첫번째 책임은 항공 트래픽이고, 두번째 책임은 “항공 트래픽과 연관된 모든 것”(“all that that implies”)이다. 이런 식으로, 여러 지방 정부 당국이 점차 그들의 권한을 포기하도록 강요되거나 혹은 그들의 권한이 없어지는걸 허용하게 되면서 항공 관제 위원회라는 중앙 정부가 이들의 책임을 인계받게 된다. 키플링이 제시한 그림은 어느정도 파시스트적이고, 그가 예상한 미래의 상황에서 파시즘이 필요조건인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의 지적인 전제를 기준으로 볼때 이해할만 것이긴 하다. 그의 새천년은 인도에서 돌아온 영국 대령의 새천년이다. 게다가 그는 돌아가면서 소리를 내는 바퀴(wheel) 수집 애호가여서, 언어나 생각의 전달보다는 사람의 육체를 수송하는 확장된 방법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의 말이나 지각의 힘이 가는 곳으로 사람의 통제력 혹은 물리적 존재가 확장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전세계를 보고 명령을 내리는 것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그의 이와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키플링은 시인으로서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예견한 상황이 곧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p>
<p>단순한 물리적 수송에 비해 정보의 수송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유럽에 있는 한 건축가가 미국에서 빌딩을 건축하는 것을 감독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건축이 진행되는 곳에는 적합한 시공사 직원들과 사무원들 등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와같은 조건에서는 어떠한 물질적인 물품을 보내거나 받지 않고도 건축가가 빌딩 건축에 주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에게 평상시처럼 건축 기획안과 설계서를 그리게 하자. 오늘날에도, 이 기획안과 설계서가 건축가의 제도실에서 그려진 바로 그 종이 자체로 건축이 진행되는 곳으로 수송될 필요가 없다. 울트라팩스(역자주: 1948년 미국의 코닥에서 분사한 RCA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팩스 기기로, 사진과 텔레비전 기술을 이용해서 사진이나 문서등을 전송할 수 있었다고 함. 바람과함께 사라지다의 전체 내용을 2분만에 전송했다고 함.)를 이용하면 모든 문서의 사본을 수 초 내에 전송할 수 있고, 전달받은 사본은 원본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훌륭한 실행계획서이다. 건축가는 매일 혹은 하루 여러차례 찍은 사진 기록을 통해 작업의 진행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고, 이 사진들 역시 울트라팩스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다. 작업의 대표에게 전하고 싶은 논평이나 조언은 전화나 울트라팩스, 전보 등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건축가의 신체나 그의 문서를 직접 전송하는 것은 메시지 전송을 통한 의사소통을 통해, 물질의 입자를 한쪽 라인에서 다른 쪽 라인으로 전송할 필요없이 매우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p>
<p>물질의 전송과 정보의 전송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통신수단을 고려하면, 사람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건 첫번째 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메시지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메시지의 전송을 통해 사람의 감각과 행동능력을 세상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장에서 이미 물질의 전송과 메시지의 전송 간의 차이가 이론적으로는 결코 항구적이거나 메울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p>
<p>이것은 우리를 사람의 개성이라는 문제 깊숙히로 데려간다. 사람의 개성의 본질이라는 문제와 하나의 인격을 다른 인격과 구분하는 기준에 관한 문제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문제다. 기독교와 그의 지중해의 선조들은 이것을 <strong>영혼</strong>이라는 개념으로 형상화했다. 기독교에 따르면, 개개인들은 영혼을 소유하는데, 이 영혼은 수정(역자주: 임신을 의미)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그 이후엔 영원히 존재를 유지하게 된다. 기독교적 신앙에 따르면 일부는 천국에서, 일부는 지옥에서, 그리고 그 중 일부는 림보(Limbo)라 불리는 중간적인 변방에서 머물게 된다.</p>
<p>불교에서도 사후에 영혼의 영속성을 인정한다는 면에서는 기독교와 같지만, 이 영속성은 천국이나 지옥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 혹은 다른 동물의 몸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실제로 불교에서도 천국이나 지옥이 존재하지만 개인이 거기에 머무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임시적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열반(Nirvana)이라 불리는 가장 마지막 단계의 천국에서, 영혼은 자신의 개별적인 정체성을 버리고 위대한 영혼(Great Soul of the World)으로 흡수된다.</p>
<p>이러한 관점들은 과학의 영향 없이 이루어진 것들이다. 영혼의 영속성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과학적 설명은 라이프니츠의 것인데, 그는 영혼을 <strong>모나드(monad)</strong>라 불리는, 보다 큰 계층의 영속적인 영적 실체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았다. 모나드들은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서로를 인지하는 작업에 모든걸 할애한다. 일부는 매우 명료하고 분명하게 지각하고, 다른 것들은 희미하고 모호하게 지각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지각은 모나드들 간의 상호작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모나드는 “창문이 없고"(“have no windows”), 세상이 창조될때 미리 예정된 그들간의 관계를 영원히 유지하도록 신에 의해 짜여졌다. 모나드는 불멸성을 가진다.</p>
<p>모나드라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적 관점 뒤에는 매우 흥미로운 생물학적 추측이 있다. 라이프니츠 시대에 레벤후크(역자주: 1632-1723, 네덜란드의 박물학자)는 매우 작은 동물과 식물을 연구하는데 처음으로 현미경을 사용했다. 그가 본 동물중 하나가 정자였다. 포유류의 경우 정자는 난자에 비해 훨씬 쉽게 발견하고 관찰할 수 있다. 인간의 난자는 한번에 하나씩만 배출되고, 수정되지 않은 자궁내 난자나 매우 초기단계의 배아는 최근까지도 해부학 수집품에서 희귀품이었다. 따라서 초기의 현미경학자들은 정자를 아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기 쉬웠고, 그 당시에 아직 관찰되지 않은 현상인 수정과정을 간과했다. 게다가 그들의 상상력은 정자의 앞쪽 부분, 즉 정자의 머리를 미세한 태아가 머리를 앞으로 하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으로 보았다. 이 태아는 그 자신이 또한 다음 세대의 인간이 될 태아를 가진 정자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됐고, 이는 무한히 반복된다. 여자는 단순히 정자의 유모일 뿐이라고 생각됐다.</p>
<p>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생물학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정자와 난자는 개인의 유전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거의 동등하게 참여한다. 게다가 다음 세대의 생식 세포는 그것들에 실재로 포함되어 있다기 보다 잠재적으로만 포함이 되어 있다. 물질은 무한히 나누어질 수 없고, 어떤 절대적인 관점에서도(from any absolute standpoint) 매우 미세하게 나눌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벤후크의 정자를 계속 나누다보면 곧 전자의 단위까지 넘어서게 될 것이다.</p>
<p>오늘날 널리 퍼져있는 관점에서는 라이프니츠의 관점과 다르게, 개인의 지속성은 매우 명확한 시작 시간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죽음과는 별개로 종료 시간 까지도 가지고 있다. 개구리의 수정된 난자는 첫번째 세포 분화에서 두 개의 세포로 나누어지는데, 이들이 적절한 조건에서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이렇게 분리되면 이들은 두 마리의 완전한 개구리로 성장하게 된다. 배아에 해부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면 실험이 충분한 이 상황은 정상적인 일란성 쌍둥이를 만드는 현상과 동일하다. 이것은 사람의 일란성 쌍둥이에게 벌어지는 현상과 정확히 일치하며, 한번 출산할때마다 네마리의 쌍둥이를 낳는 아르마딜로에게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덧붙여서, 배아를 두 부분으로 분리하는 것이 불완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중복기형(역자주: 쌍둥이가 몸의 일부분이 붙어서 태어나는 경우)이다.</p>
<p>쌍둥이를 만드는 이 문제는 처음 볼때는 실제 그런것 만큼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서 동물이나 사람을, 충분히 발달된 마음이나 영혼과 관련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게 분리된 쌍둥이인 중복기형의 문제 조차도 이런 관점에서는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생존 가능한 중복기형아는 반드시 하나의 중앙 신경체계를 가지거나, 혹은 충분히 발달된 두 개의 두뇌를 가져야 한다. 어려움은 다중인격의 문제라는 다른 단계에서 발생한다.</p>
<p>한 세대 전에 하버드의 모튼 프린스 박사는 한 소녀의 병력을 소개했는데, 그녀의 몸에는 좋건 나쁘건 발달된 여러 개의 인격이 순차적으로 나타나거나 심지어 어느 정도는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다. 요즘에는 심리학자들이 프린스 박사의 연구결과가 언급되면 이를 어느 정도 깔보는 경향이 있고, 그 현상을 히스테리로 취급한다. 인격의 분리는 프린스 박사가 생각했던 것 만큼 확실하게 분리된 것이 아니었을 수 있다. “히스테리”라는 단어는 의사들에 의해 분명하게 관찰된 현상을 가리키긴 하지만,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은 매우 부족해서 이것 역시 또하나의 불충분한 별칭으로 봐야 할 것이다.</p>
<p>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개인의 물리적인 정체성은 개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진대사에 참여하는 요소들을 태깅하는 현대적인 방법들을 통해 몸 전체 뿐만 아니라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모든 요소들의 회전율(역자주: 신진대사에서 합성과 분해가 이루어지는 회전율)이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물의 생물학적 정체성은 과정의 지속성과, 과거의 발달과정에서 형성된 기억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정신적인 발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의 관점에서 본다면, 마음의 개성은 과거의 기억과 테이핑을 유지하는 것에, 그리고 이미 짜여진 구성대로 발달을 지속하는 것에 달려있다.</p>
<p>하나의 컴퓨터의 패턴을 그대로 본따서 다른 컴퓨터를 테이핑하는데 사용되고, 이 두 컴퓨터가 테이핑에 있어서 미래의 변경과 경험을 제외하고는 동일하게 유지해 나간다고 가정하면, 살아있는 개체가 동일한 과거를 공유한체 두 개로 분기해서 점차 다른 개체로 자라나는 것과 모순되는 것이 없다. 이것이 정확하게 일란성 쌍둥이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신체의 분리 없이 일어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시한번 컴퓨터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전체가 하나로 동작하도록 프로그램된 컴퓨터가 크건 작건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가진 여러 개의 부분적인 프로그램 모듈들로 나누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프린스 박사의 관찰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설명이 될 것이다.</p>
<p>게다가, 두개의 커다란 기계가 전에는 독립적으로 동작하다가 특정 시점부터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의 기계로 동작하는 것도 생각해 볼수 있다. 실제로 생식 세포가 하나로 합쳐질때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물론 이 경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순수한 정신적인 차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혼의 개성에 관한 교회적 관점에 필요한 정신적인 정체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p>
<p>정리하자면, 신체의 개성은 돌과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불꽃과 같은 것이며, 물질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형태에 의한 것이다. 이 형태는 전송되거나 수정되거나 복제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 우리는 짧은 기간동안 복제하는 방법만을 알고 있다. 생식세포의 감수 분열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의 세포가 둘로 나누어질 때, 혹은 우리의 물질적, 정신적 출산권을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분리될 때, 살아있는 세포조직이 자기복제를 위해 미리 조건지워진 패턴대로 물질이 분리되게 된다. 이렇게 때문에, 우리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보를 보낼때 사용하는 전송 방식과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사람과 같은 살아있는 생물을 보내는 전송 방식 사이에 절대적인 차이는 없다.</p>
<p>그러므로, 사람이 기차나 비행기로 여행할 뿐만 아니라 전보를 통해서도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록 현실화하기는 어렵지만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자. 물론 어려움은 엄청나다. 하나의 생식세포 안에 있는 모든 유전자들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있는 정보들의 양을 측정해서,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유전적인 정보의 양과 비교되는 학습된 정보의 양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 메시지가 의미를 가지려면, 적어도 <strong>브리태니커 백과사전</strong> 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생식세포 내에 포함된 모든 비대칭탄소원자(역자주: 생명현상과 관련된 모든 분자는 비대칭탄소원자로 이루어져있다고 함)들의 수를 <strong>브리태니커 백과사전</strong>을 코드화하는데 필요한 점과 선의 수(역자주: 이진수로 표기된 코드의 수)와 비교해보면, 전자가 훨씬 많은 메시지를 구성하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의 메시지를 전보를 통해 전송하는 상황이 어떨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훨씬 더 인상적일 것이다. 인체를 스캐닝하는 것은 인체의 모든 부분을 다 훑어서 검사하는 것이 될테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세포조직을 파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신체조직을 다른 물질을 이용해 다른 곳에서 재생산 하기 위해 조직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한편 조직의 일부분이 천천히 파괴되는 과정을 거치게되면 이 조직의 활동성이 낮아지게 되고, 이는 대부분 해당 세포조직의 생명을 파괴하는 결과를 조래하게 된다.</p>
<p>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사람의 패턴을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전보를 통해 보낼수 없다는 사실은 기술적인 어려움, 특히 급격한 재구성 과정동안 신체조직을 살아있도록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디어 자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살아있는 생물의 급진적인 재구성 문제에 관해서는, 번데기가 나비로 변태하는 과정만큼 급진적인 재구성의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p>
<p>이제까지 이야기한 것은, 사람을 전보로 보낼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공상과학 소설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사실이 통신의 근본적인 개념이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물질의 몸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이 유일하게 상상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교통수단의 중요성에 대한 키플링의 실험을, 사람의 몸을 전송하는 교통수단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사람의 정보를 전송하는 교통수단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p>
</div>
<div id=header>
<span class=btn-left onclick="toc()">목차</span>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br>
5장. 메시지로서의 생물
</div>
<script src="book.js"></script>
<div id=footer>
<span class=btn-left onclick="prevPage()">이전</span>
<span id='pg-count'>-</span>
<span class=btn-right onclick="nextPage()">다음</span>
<script>setPageCount();</script>
</div>
</body>
</html>